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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더 글로리> 문동은의 힘, 악의 아이콘 박연진

by ruby0610 2025. 5. 16.

‘더 글로리’의 서사는 어떻게 시청자를 압도하는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는 단순한 복수극이 아닙니다. 이 드라마는 피해자의 시선을 따라가며, 어떻게 상처가 인생 전반을 지배하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정교한 감정 서사입니다. 특히 이야기 전개 방식이 강력한 몰입력을 만들어내는데, 그것은 현재와 과거가 교차 편집되며 문동은의 고통과 분노를 체계적으로 전달하기 때문입니다. 시청자는 그녀의 상처를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반복적으로 마주하게 되고, 그 고통이 어느 순간 자신의 감정처럼 이입되게 됩니다.

1화부터 강렬하게 등장하는 학교폭력 장면은 자극적인 장치를 넘어서, 인물의 동기와 변화의 기저로 작동합니다. 복수의 정당성은 단지 감정이 아니라, 삶 전체를 흔든 폭력의 구조에서 비롯되며, 이는 드라마가 단선적인 ‘선악 구도’를 넘어서게 만듭니다. 이후 등장하는 문동은의 복수 계획과 그 실행 과정은 느리지만 세밀하게 쌓여갑니다. 그녀가 만든 복수의 퍼즐은 일방적 보복이 아닌 정서적 해방의 과정이자, 감정을 회수해가는 여정으로 읽힙니다.

《더 글로리》의 서사가 압도적인 이유는 바로 이 ‘감정의 설계’에 있습니다. 단지 복수를 성공시키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의 원인과 그 영향, 그리고 치유와 책임까지 함께 조명합니다. 가해자들이 몰락하는 순간에도 통쾌함보다는 공허함과 생각할 거리를 남기며, 시청자 각자에게 “정의란 무엇인가?”, “용서는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이것이 바로 《더 글로리》가 깊이 있는 서사로 평가받는 이유이며, 단순한 복수극을 넘어선 감정적 미학의 성취라 할 수 있습니다.

 

문동은이라는 인물의 힘: 피해자가 주체가 되는 이야기

《더 글로리》에서 문동은은 단순한 피해자의 위치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그녀는 철저한 계획 아래 복수를 준비하고, 복수의 과정을 단 한 순간도 타인에게 맡기지 않는 ‘능동적인 피해자’로 그려집니다. 기존 드라마에서 피해자 여성 캐릭터는 주로 무력하거나, 누군가의 구원을 기다리는 입장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문동은은 그런 방식의 피해자상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 드라마는 ‘서사를 되찾는 사람’으로서의 피해자를 중심에 놓습니다. 그녀는 스스로 무너진 삶을 재건하며, 복수라는 도구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다시 새겨 넣습니다.

이 인물의 힘은 단지 복수를 실행하는 데서 나오지 않습니다. 문동은은 자신의 약함도 그대로 끌어안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녀는 강해지려고 복수를 택한 것이 아니라, 이미 부서진 자신을 회복할 방법이 그것뿐이었기에 복수를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주변 인물과 관계를 맺고, 그들의 상처와도 연대합니다. 주여정과 강형남은 단지 도와주는 조력자가 아니라, 각자의 고통 속에서 문동은과 함께 의미를 찾아가는 존재들입니다. 피해자가 연대와 감정의 주체로 거듭나는 이 구조는 《더 글로리》가 단순히 복수극으로 소비되지 않게 만든 가장 큰 동력입니다.

《더 글로리》가 사랑받은 이유는 문동은이 ‘약하지만 무너지지 않는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피해자가 스스로를 구원하는 이 이야기는, 단지 복수극이 아닌, 존엄을 되찾아가는 서사로 기억될 것입니다.

 

박연진은 왜 악의 아이콘이 되었는가?

박연진은 《더 글로리》에서 가장 강렬한 인상과 분노를 동시에 자아내는 인물입니다. 그녀는 단지 ‘악역’이 아니라, ‘악의 구조’를 보여주는 하나의 시스템이기도 합니다. 학창 시절 주도적인 폭력을 행사했던 그녀는 어른이 된 후에도 아무런 처벌 없이, 오히려 사회적으로 더 성공한 위치에 올라 있습니다. 이는 단지 그녀의 개인적 성향이나 악의로만 설명되지 않습니다. 《더 글로리》는 그녀를 통해 ‘가해자는 처벌받지 않는다’는 한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드러냅니다.

박연진은 권력을 지닌 가해자입니다. 그녀는 기자 남편, 교육청 내 인맥, 경찰과의 유착 등 다양한 ‘보호막’을 등에 업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철저히 무감각하고, 무책임한 인물로 그려집니다. 그 누구에게도 사과하지 않고,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으며, 모든 것을 부정하거나 덮으려 합니다. 이러한 태도는 단순한 개인의 문제를 넘어, 이 사회에서 '권력 있는 가해자'가 어떤 방식으로 살아남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녀의 몰락은 단지 개인의 파멸이 아니라, 정의의 복원이 어떤 방식으로 가능할 수 있는지를 가시화하는 장면입니다.

박연진이 '악의 아이콘'으로 남은 이유는 단지 잔혹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녀는 끝까지 반성하지 않았고, 그에 걸맞은 책임도 회피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더 글로리》는 그녀의 파멸을 통해 시청자에게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악을 미화하거나 덮지 않는 태도를 끝까지 유지합니다. 결국 박연진은 단지 드라마 속 인물이 아니라, 우리 사회 곳곳에 침잠해 있는 ‘무너질 줄 모르는 가해자’의 얼굴입니다. 그녀의 존재는 허구가 아닌 현실의 그림자를 비추고 있으며, 그래서 더욱 불편하고, 그래서 더 강하게 기억에 남습니다.

 

‘복수’는 해답이 될 수 있을까? 더 글로리의 윤리적 긴장감

《더 글로리》의 가장 도전적인 지점은 복수라는 주제를 다루면서도 그것을 일방적인 정당화로 마무리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대부분의 복수극은 피해자의 복수를 정의로 그리며, 시청자의 감정적 쾌감을 위해 악인을 철저히 파괴합니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복수를 실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윤리적 혼란과 정서적 파장을 끝까지 응시합니다. 문동은이 가해자들을 무너뜨리는 순간, 시청자들은 통쾌함을 느끼지만, 동시에 '정말 이것이 끝인가?'라는 질문에 부딪히게 됩니다.

특히 주여정과 문동은의 관계는 이 복수의 한계를 드러냅니다. 주여정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범인에게 복수하고자 하지만, 그 복수는 오히려 그를 더 무겁게 짓눌러버립니다. 문동은 또한 복수 이후에도 마음의 평안을 얻지 못합니다. 그녀는 마지막까지 “내가 잘 살게 되면 괜찮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집니다. 이 질문은 곧 시청자 모두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더 글로리》는 복수를 이상화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복수 이후’의 삶에 집중하면서, 피해자가 복수라는 행위조차도 감당해야 하는 무게를 다룹니다. 결국 이 드라마는 복수를 통해 정의가 회복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것이 또 다른 책임과 고통을 동반한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복수는 끝이 아니라, 고통을 돌아보는 또 하나의 여정임을 이 드라마는 조용히 말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