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넷플릭스 <트렁크> - 결혼회사 NM이 던지는 질문들

by ruby0610 2025. 5. 15.

 

‘맞춤형 결혼’이라는 설정, 얼마나 현실적일까?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트렁크》는 ‘맞춤형 결혼’이라는 다소 충격적인 설정으로 시작됩니다.

극 중 결혼회사 NM은 고객이 원하는 이상형을 분석해 가장 적합한 파트너를 매칭하고, 일정 계약 기간 동안 부부로 살아가게 합니다. 이 시스템은 마치 이상적인 결혼을 기계처럼 설계해주는 듯 보이지만, 드라마는 이 설정을 통해 오히려 사랑과 결혼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현실에서도 소개팅 앱, 맞춤형 결혼 정보 회사, MBTI 기반 연애 콘텐츠처럼 다양한 형태의 '연애 설계 도구'들이 이미 존재하고 있으며, 《트렁크》는 이 흐름을 극단적으로 확장한 설정이라 볼 수 있습니다. 조건에 기반한 매칭이 관계의 시작을 쉽게 만들어줄 수는 있지만, 그것이 감정까지 완성시킬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입니다. 드라마는 바로 이 지점을 집요하게 파고듭니다.

맞춤형 결혼이 가능한가, 가능하다면 그것은 행복한가? 등장인물 대부분은 이상적인 조건을 바탕으로 결혼을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감정이 예측 불가능하다는 사실에 직면하게 됩니다. 때로는 무관심 속에서 마음이 싹트기도 하고, 완벽해 보이는 파트너와는 정서적 벽을 느끼기도 하죠. 그 결과, 인물들은 계약이라는 틀 안에서 오히려 감정의 왜곡, 혼란, 그리고 진심에 대한 갈증을 겪게 됩니다.

《트렁크》는 이처럼 ‘맞춤형 결혼’이라는 설정을 통해 현대인의 결혼관이 지나치게 실용적이고 계산적으로 흘러가는 현실을 풍자합니다. 동시에 사랑이란 감정이 어떤 외적 조건도 아닌, 오랜 시간의 경험과 관계 속에서 자라나는 것임을 조용히 강조합니다.

결국, 이 드라마는 시스템이 아무리 정교해도 감정이라는 변수는 끝내 설계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며, 진짜 사랑이란 예상치 못한 순간, 예상치 못한 사람과의 교류 속에서 생겨난다는 진리를 되새기게 합니다.

 

‘결혼회사 NM’은 현대인의 외로움을 해결할 수 있을까?

《트렁크》의 세계에서 등장하는 결혼회사 NM은 감정조차 시스템으로 설계 가능한 시대의 극단을 상징합니다.

사랑과 결혼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이상적인 조건의 파트너를 제공하고, 계약 기간 동안 법적인 부부 관계를 유지하게 만드는 이 서비스는 현대인의 불안과 외로움을 겨냥한 대안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오히려 그 외로움을 더 선명하게 드러내는 장치로 기능합니다.

현대 사회는 어느 때보다도 사람 간의 연결이 어려운 시대입니다.

SNS로 끊임없이 누군가와 소통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실제 감정적 교류는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가까운 사이’의 경계는 모호해지고, 연애는 시간과 감정의 투자가 필요한 일로 여겨지며 점점 미뤄지는 삶의 선택이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NM은 간편하고 정교한 방식으로 관계를 설계해 주며, 마치 ‘맞춤형 사랑’이 고립을 해결할 수 있을 것처럼 제시됩니다.

그러나 드라마는 이러한 착각을 서서히 무너뜨립니다. 이상적인 조건으로 선택한 상대와 함께 있음에도, 등장인물들은 끊임없이 외로움을 느낍니다. 그 이유는 관계가 ‘같이 있음’으로만 충족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진짜 위로와 연결은 상대를 알고, 나를 들여다보고, 감정을 주고받는 경험에서 만들어집니다. NM은 조건을 제공했지만, 감정은 설계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감정은 ‘생기면 안 되는 것’으로 통제됩니다. 대표적인 인물인 노정원은 겉보기에 모든 조건을 갖춘 사람이지만, 누구에 게도 마음을 열지 못하고 스스로를 고립된 섬처럼 살아갑니다. 그는 NM의 시스템을 신뢰하지만, 정작 그 안에서 누구와도 깊은 감정 교류를 하지 못합니다. 한정원 또한 마음의 상처를 감춘 채 이상적인 남편 역할을 수행하지만, 그 틀 속에서 진심 없이 살아가는 일이 더 외롭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트렁크》는 질문을 던집니다.

"과연 조건과 계약이 외로움을 대신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 질문에 “아니다”라고,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답합니다.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는 데 필요한 것은 ‘합의’가 아니라 ‘공감’이며, ‘스펙’이 아니라 ‘진심’이라는 것을 이 드라마는 계속해서 보여줍니다. 결국 NM이 만들어낸 결혼은 외로움을 완전히 지워주지 못합니다. 오히려 진짜 감정을 나눌 수 없는 관계 속에서, 더 깊은 고립을 만들어내는 역설적인 구조로 작동합니다. 《트렁크》는 그 점을 날카롭게 짚으며, 우리가 외로움을 해소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회복해야 할 것은 ‘감정을 나눌 용기’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드라마 《트렁크》의 주제는 ‘사랑’일까, ‘거짓’일까?

《트렁크》는 처음부터 “이 관계는 진짜일까?”라는 의심으로 시청자를 붙잡는 작품입니다.

맞춤형 결혼이라는 제도, 계약서를 통해 시작된 관계, 그리고 외형만으로는 이상적이지만 어딘가 비어 있는 인간들.

드라마는 전통적인 사랑 서사를 따르지 않고, 오히려 ‘감정의 진실 여부’를 끊임없이 묻는 방식으로 이야기의 긴장감을 유지합니다.

주인공 노정원과 한정원은 NM이 연결해준 계약 결혼 커플입니다. 그들은 서로의 조건과 목적이 일치한 관계 안에서 부부로 지내지만, 그 관계는 ‘제도’와 ‘의무’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표면적으로는 문제없이 흘러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들은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나는 이 사람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걸까, 아니면 계약에 길들여진 걸까?” 이 질문은 단지 두 사람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는 감정의 혼란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드라마는 ‘사랑이란 무엇인가?’라는 오래된 질문에 매우 현대적인 방식으로 접근합니다. 정서적 안정, 외로움의 해소, 사회적 조건 등 사랑과 닮은 요소들은 많지만, 그게 진짜 사랑일까요?

《트렁크》는 바로 이 지점에서 ‘거짓’이라는 키워드를 꺼냅니다.

사랑처럼 보이지만, 실은 혼자의 결핍을 감추기 위한 장치였던 관계들. 함께 있는 이유가 감정보다 시스템에 가까운 순간들. 그리고 그 속에서 생겨나는 미묘한 균열. 하지만 《트렁크》가 말하는 ‘거짓’은 단순한 위선이나 연기 그 자체는 아닙니다. 오히려 ‘가짜로 시작된 관계 안에서도 진짜 감정이 자라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노정원과 한정원은 처음엔 서로를 믿지 않지만, 각자의 상처를 통해 연결되고, 관계 안에서 예기치 않게 진심을 마주합니다. 이때 드라마는 ‘사랑은 태초부터 진실일 필요는 없다’는, 어쩌면 가장 현실적인 사랑론을 말합니다.

결국 《트렁크》는 사랑과 거짓을 이분법적으로 나누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둘이 겹쳐 있는 영역을 탐색하면서, 감정이 얼마나 복합적이고 모순적인지를 보여줍니다. 이 드라마가 전달하는 메시지는 명확합니다. "사랑은 믿는 것이 아니라, 결국 살아내는 것이다." 그것이 거짓으로 시작했더라도, 끝내 진짜가 될 수 있다면 말입니다.